
한동안 산책을 못 나갔다. 너무 더운 탓도 있었지만, 진짜 이유는 이어폰을 잃어버려서였다.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산책은 내게 무의미하다.
모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고, 테무에서 산 이어폰도 도착했기에 들을 음악을 고르고 집을 나섰다. 차가운 저녁 공기가 얼굴에 와닿는다. 싸구려 이어폰이지만 기분 좋아지는 음악과 저녁 바람이 맞닿으니, 잠자고 있던 감성이 살아난다. 거의 한 달 만이다.
저녁 8시에 22도라니!
엔니오 모리꼬네의 '가브리엘의 오보에'를 들으며 건널목을 지나는데, 극한의 여름을 이겨낸 가로수 나뭇잎들이 새삼 대견하고 멋져 보인다. 끝없는 더위가 일생을 덮쳐버릴 것만 같았는데, 자연은 고맙게도 약속을 꼭 지켜준다. 확실히 하늘이 높아졌다.
가을이 온다는 건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겠지. 시계가 빨라진다.